우두를 놓으면 천연두를 벗어난다. 아주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앓더라도 경하게 앓는다. 그러므로 근년에 와서는 누구든지 우두를 놓으며 그래서 별로 곰보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정신에도 마마가 있으니까 정신에도 천연두가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든지 질투라든지 실망, 낙담, 슬픔, 궤휼, 간사, 흉악, 음란, 행복, 기쁨, 성공 등 인생의 만만 현상은 다 일종 정신적 마마라. 소위 약은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의 괴로워하는 양을 차마 보지 못하여 아무쪼록 그네로 하여금 일생에 이 마마를 겪지 않도록 하려 하나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지 못할 것이다. 야매한 사람들이 마마에 귀신이 있는 줄로 믿는 것은 잘못이어니와 이 정신적 마마야말로 귀신이 있어서, 지키는 부모 몰래 그네의 사랑하는 자녀의 정신 속에 숨어 들어가는 것이라. 그러므로 자녀에게 인생의 모든 무섭고 더러운 방면을 감추려 함은 마치 공기 중에는 여러 가지 독균이 있다 하여 자녀들을 방 안에 가두어 두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바깥 독균 많은 공기에 익지 못한 자녀의 내장은 독균이 들어가자마자 곧 열이 나고 설사가 나서 죽어 버린다. 그러나 평생에 바깥 공기에 익어서, 내장에 독균을 대항할 만한 힘을 기르면 여간한 독균이 들어오더라도 무섭지를 아니하다. 한번 우두로 앓은 사람은 천연두균을 저항하는 힘이 있는 것과 같다.
선형은 지금껏 방 안에 갇혀 있었다. 그는 공기 중에 독균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고 그는 우두도 놓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지금 질투라는 독균이 들어갔다. 사랑이라는 독균이 들어갔다. 그는 지금 어찌할 줄을 모른다. 그가 만일 종교나 문학에서 인생이라는 것을 대강 배워 사랑이 무엇이며 질투가 무엇인지를 알았던들 이 경우에 있어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언마는 선형은 처음 이렇게 무서운 변을 당하였다.
선형은 얼마 울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고 지금 지나간 자기의 심리(心理)를 돌아보고 깜짝 놀라며 진저리를 쳤다. 선형의 눈은 둥글어진다.
‘내가 어찌 되었는가’ 하고 한참 숨을 멈춘다. 첫번 지내 보는 그 아픈 경험이 마치 캄캄한 밤과 같은 무서움을 준다. ‘이게 무엇인가’ 하고 오싹오싹한 소름이 두어 번 전신으로 쪽쪽 지나간다. 그러다가 멀거니 차실을 돌아보면서,
‘퍽도 오래 있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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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은 몹시 무서운 생각이 난다. 자기의 내장이 온통 빠지직 타는 듯하고 코로는 시커먼 불길이 활활 나오는 듯하다. 씨걸씨걸 하는 자기의 숨소리가 마치 자기의 곁에 어떤 커다란 마귀가 와 서서 후후 찬 입김을 불어 주는 것 같다. 자기의 몸이 마치 성경을 배울 때에 상상하던 컴컴한 지옥 속으로 둥둥 떠 들어가는 것 같다. 선형은 흑 하고 진저리를 치며 차실 내에 여기저기 앉아 조는 사람들을 돌아본다. 그 사람들도 모두 다 무서운 마귀가 된 것 같다. 그 사람의 얼굴들이 금시에 눈을 뚝 부릅뜨고 자기를 향하고 달려들 것 같다.
‘아이구 무서워!’ 하고, 선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얼굴을 가리면 영채와 형식의 모양이 또 보인다. 둘이 꼭 쓸어안고 뺨을 마주대고서 비웃는 얼굴로 자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가 그 곁에 섰다가 퇴 하고 침을 뱉으면 영채와 형식이가 갑자기 무서운 마귀가 되어서 ‘응’ 하고 자기를 물어뜯는 것 같기도 하다. 선형은 ‘아이그 어머니!’ 하고 푹 쓰러졌다. 선형의 몸은 알 수 없는 무서움으로 들들 떨린다. 선형은 얼른 하느님 생각을 하고 기도를 하려 하였다. 그러나 ‘하느님, 하느님’ 할 따름이요, 다른 말이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몇 번 하느님을 찾다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이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말았다. 그만해도 얼마큼 무서운 생각이 없어지고 숨소리가 순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형은 곁에 그리스도가 와서 선 것을 상상하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때 형식이가 우선으로 더불어 돌아왔고, 또 선형의 손등에 입을 댄 것이라. 선형은 그때에 결코 잠이 든 것은 아니었다. 형식이가 돌아오는 줄을 알면서도 일부러 눈을 뜨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형식의 입술이 자기의 손등에 댈 때에는 손등으로 형식의 면상을 딱 붙이고 싶도록 미웠다. 이것이 다 기생과 하던 버릇이로구나 하였다.
그러고는 선형도 잠이 들었다. 휘황하던 전등은 밤새도록 이 두 괴로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고 커다란 눈을 부릅뜬 시커먼 기관차는 캄캄한 밤과 내려쏟는 비를 뚫고 별로 태우고 내리우는 사람도 없이 산굽이를 돌고 굴을 통하여 여러 가지 꿈을 꾸는 여러 가지 사람을 싣고 남으로 남으로 향하였다.
두 사람이 잠을 깬 것은 차가 삼량진역에 닿을 적이었다. 시계의 짧은 침은 벌써 다섯시를 가리켰으나 하늘이 흐려 아직도 정거장의 등불이 반작반작한다.
차장이 모자를 옆에 끼고 은근히 고개를 숙이더니,
“두 군데 선로가 파손되어 네 시간 후가 아니면 발차할 수가 없습니다” 한다.
자다가 깬 손님들은 모두 눈을 비비며 “응, 응” 하고 불평한 소리를 하다가 모두 짐을 꾸며 가지고 내린다. 어떤 사람은 차창으로 내다보다가,
“저 물 보게, 물 보게!” 하며 기쁜지 슬픈지 알 수 없는 감탄을 발한다. 비 외투를 입은 역부들은 나는 상관없다, 하는 듯이 시치미떼고 슬근슬근 열차 곁으로 왔다갔다한다. 정거장은 무슨 큰일이나 난듯이 공연히 수선수선한다. 형식은,
“우리도 내리지요. 네 시간을 어떻게 차 속에 있겠어요” 하고 선형을 본다. 선형은 형식의 입을 보고 어젯저녁 자기의 손등에 대던 생각을 하고 속으로 우스워하면서,
“내리지요!” 하고 먼저 일어선다. 형식은 가방과 담요들을 한데 들고 앞서 내리고 선형은 형식의 보던 책과 자기의 손가방을 들고 형식의 뒤를 따라 내렸다. 개찰구 곁에 갔을 적에 병욱이가 뛰어오며 뉘게 하는 말인지 모르게,
“내리셔요!” 하고 아침 인사를 잊어버린 것을 생각하고 웃는다.
“녜, 네 시간이나 어떻게 기다리겠습니까. 여관에 들어 좀 쉬지요…… 물구경이나 하고요.”
“그러면 저희도 내리겠습니다. 잠깐 기다려 주셔요!” 하더니 저편으로 뛰어간다. 형식과 선형의 눈도 그리로 향하였다. 영채가 이편으로 향한 차창에 서서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보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다. 형식은 ‘어찌하나’ 하고, 선형은 ‘조 요물이’ 하였다. 병욱이가 뛰어가서, “얘, 우리도 내리자. 저이들도 내리시는데” 하고 뒤를 돌아보는 것을 보고야 비로소 영채도 형식과 선형을 보았다. 그러고 얼른 고개를 움촐하였다.
병욱이가 앞서고 영채는 병욱의 뒤에 서서 병욱의 그늘에 자기의 몸을 감추려는 듯이 비실비실 형식의 곁으로 온다. 병욱이가 실적 빗겨 서매 영채와 형식과는 정면으로 마주서게 되었다. 영채는 형식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다음에 선형을 향하고 방그레 웃으며 은근하게 인사를 하였다. 선형도 웃으며 답례하였다. 그러나 둘이 다 일시에 얼굴을 붉혔다.
네 사람은 열을 지어서 개찰구를 나섰다. 일없는 손님들은 네 사람의 행색을 유심히 보며 혹 웃기도 하고 수군수군하기도 한다. 마치 형식이가 세 누이를 데리고 가는 것 같다. 대합실에서 여관 하인에게 짐을 맡기고 네 사람은 그 하인의 뒤를 따라 나가다가 정거장 모퉁이에 서서 붉은 물이 굽실굽실하는 낙동강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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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물 보셔요!” 하고 병욱이가 가시 돋은 철사에 배를 대고 허리를 굽히며 소리를 친다. 다른 세 사람도 속으로는 ‘저 물 보게’ 하면서도 아무도 입 밖에 말을 내지는 아니한다.
“저것 보게. 저기 저 집들이 반이나 잠겼습니다그려!” 하고 마산선으로 갈려 나가는 길가에 있는 초가집들을 가리킨다. 과연 대단한 물이로다. 좌우편 산을 남겨 놓고는 온통 시뻘건 흙물이로다. 강 한가운데로 굼실굼실 소용돌이를 쳐가며 흘러내려가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그 물들이 좌우편에 늘어선 산굽이를 파서 얼마 아니 되면 그 산들의 밑이 빠져 나갈 것 같다.
길이 좁아서 미처 빠지지를 못하여 우묵우묵한 웅커리(웅덩이)라는 웅커리는 하나도 남겨 놓지 않고 쓸어들여서 진을 치고 앞선 물들이 다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길을 잃은 물은 사람 사는 촌중에까지 침입하여 사람들을 다 내어몰고 방 안, 부엌, 벽장 할 것 없이 온통 점령을 하고 말았다. 그러고 집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아이를 업고 늙은이를 이끌고 높은 데 높은 데를 찾아 산으로 기어오른다. 사람들이 (중히 여기고) 중히 여기어 남을 주기는커녕 잠깐 만져만 보자고 하여도 눈이 벌개지며 “못 한다” 하던 모든 세간을 그 벌건 물들이 이리 둥실 저리 둥실 띄워 가지고 왔다갔다하다가 물결에 강 한복판으로 집어던져 빙글빙글 곤두박질을 하며 한정없는 바다로 흘려내려 보낸다.
사람들이 여름내에 애써서 길러 놓은 곡식들도 그 붉은 물결 속에서 부다끼고 또 부다끼어 그 약한 허리가 부러지는 것도 있을 것이요, 그 부드러운 뿌리가 끊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라. 장차 누렇게 열매를 맺어 가을밤 골안개에 무거운 고개를 숙이려 하던 벼의 꽃도 다 말이 못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온 땅은 전혀 붉은 물의 지배하(支配下)에 들어가고 말았다.
비는 그쳤건마는 하늘에는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검은 구름장이 뭉글뭉글 떠돈다. 부리나케 동편을 향하고 달아나다가는 무슨 생각이 나는지 또 서편을 향하고 몰려간다. 이따금 참다못한 듯이 붉은(굵은) 빗방울이 우수수 떨어진다.
벌거벗은 높은 산에는 갑자기 된 폭포와 시내가 거꾸로 매어달린 듯이, 마치 검은 바탕에다가 여기저기 되는 대로 흰 줄을 그어 놓은 것 같다. 그 개천들이 벌거벗은 산들의 살을 깎고, 뼈를 우귀어 가지고 내려오는 소리가 무섭게 흘러가는 강물 소리와 합하여 웅대한 합주(合奏)를 듣는 것 같다.
땅은 목말랐던 판에 먹을 수 있는 대로 실컷 물을 먹어서 무럭무럭하게 되었다. 마치 지심(地心)까지 들여져 젖을 것 같다. 하늘 위이며 땅 밑이 온통 물 세상이로다. 이 물 세상에 서서 사람들은 ‘어찌 되려는고’ 하고 하늘만 우러러본다. 병욱은 다시,
“이렇게 물이 많이 나서 흉년이나 아니 들까요?” 하고 형식을 본다. 형식도 우적우적 높은 땅으로 기어오르는 사람들을 보고 섰다가 고개를 병욱에게로 돌리며,
“글쎄올시다. 이제라도 곧 비가 그쳤으면 좋으련마는 이제 하루만 더 오면 연사는 말이 아니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을 하는 동안에 세 처녀는 일제히 형식의 입을 바라본다. 그네의 속에는 개인(個人)을 뛰어난 일종의 근심과 두려움이 찬다. ‘큰물’, ‘흉년’ 하는 생각과, 물소리와 뭉굴뭉굴하는 구름과, 집을 잃고 높은 땅으로 기어오르는 사람은 그네로 하여금 개인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공통한 생각…… 즉 사람으로 저마다 가지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선형도,
“이제 비가 그치면 오늘 안으로 이 물이 다 찔까요?” 하고 형식을 본다.
“아마, 내일 아침까지는 갈걸요” 한다.
“상류(上流)에 비가 아니 오면 곧 찌지마는 상류에 비가 오면……” 하고 영채가 연전 평양은 비도 아니 오는데 대동강이 범람하던 생각을 한다.
“평양 시가에도 물이 들어올 때가 있나요?” 하고 선형이가 영채를 보며 묻는다.
“들어오구말구요. 성내에는 별로 들어오는 일이 없지마는 외성에는 흔히 들어옵니다. 그저께도 외성 신시가로 배를 탔다구(타구) 다녔는데요” 하고 선형의 눈을 실적 본다. 선형이 얼른 눈을 피하였다. 병욱은 한참 듣다가 빙긋 웃으며 속으로, ‘너희들이 잘 이야기를 한다’ 하였다. 영채는 병욱의 웃는 것을 보고 한 걸음 병욱에게 가까이 가며 남에게 아니 보이게 가만히 병욱의 손을 잡는다. 병욱은 영채의 손을 꼭 쥐어 주었다. 네 사람은 한참이나 말없이 저 보고 싶은 데를 멀거니 보고 있었다. 그러나 네 사람은 공통한 생각을 버리고 각각 제가 되었다. 그러고 본즉 여기 서서 구경할 재미도 없어졌다. 그래도 그냥 우두커니 섰다가 의논한 듯이 네 사람은 슬몃 발을 돌려 거기서 십여 보가 다 못 되는 여관으로 향하였다. 하녀들과 반토(지배인)가 “이랏샤이(어서 오십시오)“를 부르고 네 사람은 이층 북편 끝 하치조마(八疊間)로 인도한다. 지나가면서 보건대 각 방에는 손님이 다 찬 모양이요, 모두 무슨 이야기들을 한다. 여관은 물난 덕에 매우 흥성흥성하게 되었다. 네 사람이 각각 방석을 당기어 깔고 앉자마자 소나기가 (쏴 하고) 여관의 함석 지붕을 때린다.
“아이구, 저 집 잃은 사람들을 어찌해” 하고 세 처녀가 일시에 얼굴을 찌푸린다. 비는 좍좍 퍼붓는다. 방 안은 적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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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잃은 무리들은 산기슭에 선 대로 비를 함빡 맞아서 전신에서 물이 쪽 흐르게 되었다. 어린아이를 안은 부인들은 허리를 굽혀서 팔과 몸으로 아이들을 가리운다. 그러나 갑자기 퍼붓는 빗발에 숨이 막혀서 으아 하고 우는 아이도 있다. 그러면 어머니는 머리에서 흐르는 빗물에 섞어(섞인) 눈물을 흘리면서 몸을 흔들거린다.
어떤 노파는 되는 대로 되어라 하는 듯이 우두커니 쭈그리고 앉아서 비에 가리운 먼산을 바라보고, 어떤 중늙은이는 머리 텁수룩한 총각을 데리고 그늘을 찾아서 뛰어간다.
여름내 김매기에 얼굴이 볕에 그을은 젊은 남녀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멀거니 서서 자기네가 애써 지어 놓은 논 있던 곳을 바라본다. 벌건 물결은 조곰 남았던 논까지도 차차 덮고야 말련다.
우르릉 하는 우레 소리가 한번 산천을 흔들 때마다 주렴 같은 비가 앞산으로 고함을 치고 들이달아서는 숨쉬듯 불어오는 동남풍에 비스듬히 휘면서 뒷산으로 달아 들어간다. 그러할 때마다 풀대 사이로 흙물이 모래를 밀고 왁 쓸려 내려온다. 또 한번 우레 소리가 나고는 또 한바탕 앞산 너머로서 모진 비가 밀려 넘어온다. 그 속에 백여 명 사람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가만히 섰다. 처음에는 무서운 마음도 나고 슬픈 마음도 났건마는 한참 지나서는 아무러한 생각도 없이 되었다. 굵은 빗발이 깨어져라 하고 얼굴을 때릴 때마다 흑흑 느끼며 몸을 움츠릴 뿐이라.
여러 사람의 살은 싸늘하게 식었다. 입술은 파랗게 되고 몸이 덜덜덜 떨린다. 눈앞에 늘어 있는 집들에서는 조반 짓는 연기가 나온다. 그 연기도 굴뚝 밖에 나서자마자 짓쳐 들어오는 빗발에 기운을 못 쓰고 도로 쫓겨 들어가고 마는 것 같다.
비는 언제 그칠 것 같지도 아니하다. 하늘이 온통 녹아서 비가 되고 말 듯이 쏟아져 내려온다.
그 중에 저편 언덕에 지게를 기둥삼아 낡은 거적이 하나를 덮어 놓은 것이 있고, 그 밑에는 어떤 행주치마 입고 얼굴에 주름잡힌 노파가 입술을 물고 괴로워하는 젊은 부인을 안고 앉았다. 풀물 묻은 잠방이 입은 젊은 남자는 상투 바람으로 우뚝 서서 바람에 날리려는 섬거적을 붙들고 있다. 이 귀작이(귀)가 들먹하면 이것을 누르고 저 귀작이가 들먹하면 저것을 누른다.
노파에게 안긴 젊은 부인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듯이 몸을 비틀고 이따금 아이쿠 아이쿠 하고 소리를 친다. 그러할 때마다 노파는 더 힘껏 그 부인을 껴안아 주고 젊은 남자는 고개를 기울여 들여다본다.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흙을 밀어다가 노파의 몸을 섬삼아 좌우로 흘러내려간다. 노파와 젊은 부인의 치맛자락이 흙에 묻혔다 나왔다 한다.
이윽고 우레 소리가 저 멀리 서편으로 달아나며 비가 차차 그치고 어둡던 천지가 좀 밝아진다. 산들이 모두 제 모양이 될 때에는 사방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만 칼칼하게 들린다.
이때에 젊은 남자는 섬거적을 벗겨 내어 버리고 허리를 굽혀 젊은 부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어떤고?” 한다. 그러나 부인은 몸을 비틀 뿐이요, 아무 대답도 없다. 노파가 부인의 손을 만지며,
“이것 보려무나. 이렇게 전신이 얼음장같이 차구나.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고 화증을 내며 눈물을 흘린다.
“어떻게 하나” 하고 젊은 사람도 얼굴을 찌푸린다. 부인은 또 한번 몸을 비틀며, “아이쿠,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소” 하고는 말끝에 울음이 나온다. 전신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얘, 그래도 어느 집에 가서 말을 해봐라. 그래도 인정이 있지, 그렇겠니?”
“어느 집에를 가요. 누가 앓는 사람을 들인답디까?”
이때에 저편으로서 지금 바로 조반을 먹은 형식의 일행이 나와서 차차 이편을 향하고 온다. 몸에서 물이 흐르는 사람들은 땅바닥에 그냥 주저앉아서 말없이 일행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 다른 객들도 둘씩 셋씩 담배를 피워 물고 물구경을 나온다. 갑작 비에 흙이 다 씻겨 나가서 길은 번번하다. 다만 여기저기 도랑이 져서 물이 흘러내려갈 뿐이다. 앞서서 오던 병욱은 앓는 부인 앞에 서며,
“어디가 편치 않아요?” 할 때에 남자는 한번 실적 병욱을 보고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인다. 형식과 선형과 영채도 그 앞에 와 선다. 흙투성이가 된 부인은 또 한번 몸을 비틀며, “아이쿠!” 한다. 노파는 그 바람에 뒤로 쓰러졌다가 손에 묻은 흙을 자기의 팔과 허리에 되는 대로 문대면서,
“만삭 된 태모야요. 그런데 새벽부터 이렇게 배가 아프다고……” 하며 말끝을 못 맺는다.
“댁은 어디인데요?” 하고 형식이가 묻자,
“저 물 속에 들어갔답니다. 그 왼수의 물이…… 아아, 사람을 살려 줍시오!”
부인은 또 한번, “아이쿠!” 하며 숨이 막힐 것 같다. 병욱은 부인의 손을 만져 보더니 형식을 돌아보며,
“여봅시오, 가서 방을 하나 빌어 가지고 병인을 들여다 누입시다. 아마 산기가 있나 봅니다” 한다. 영채와 선형은 얼굴을 찡그린다. 그 중에도 선형은 무서운 것이나 본 듯이 진저리를 치며 한 걸음 물러선다.
형식은 집 있는 데로 달음질을 하여 간다. 일동은 형식의 가는 양을 보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