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우선이가 형식과 선형을 눈앞에 보고, 또 그립던 영채가 같은 차를 타고, 같은 기관차에 끌려가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울 것도 자연한 일이다. 또 영채는 이미 기생도 아니요, 겸하여 형식의 아내도 아니라. 오직 한 처녀다…… 하고 우선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생각이 번개같이 가슴에 일어난다. 그래서 우선은 형식의 간 뒤를 따라, 다음 차실 문 밖에 가서 바람을 쏘여 가며 가만히 엿본다. 형식은 영채의 곁에 앉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병욱도 이따금 말참례를 한다. 세 사람의 얼굴은 아주 엄숙하다. 우선은 들어갈까말까 하다가 형식의 돌아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하고 뒷짐을 지고 기대어서 쿵쿵 찻바퀴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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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을 보내고 병욱의 돌아오는 것을 보고 영채는 병욱의 손을 잡아 앉히며,
“그래 어때요?” 하고 자기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질문을 한다. 병욱은,
“무엇이 어찌해. 형식 씨라는 이가 잘 차리구서 시치미 따고 앉았더구나. 우리 오빠를 안다구…… 동경 가서 같이 있었노라구…….”
영채는 부지불각에 한숨을 지운다.
“왜, 형식 씨가 그리우냐. 아직도 단념이 아니 되는 게로구나.”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마는…….”
“그러면 왜 휘 하고 한숨을 쉬어?”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 하고 병욱의 무릎을 치며 웃는다.
“그래도 아주 마음이 편치는 않을걸” 하고 병욱도 웃는다. 영채는 한참 생각하더니 병욱의 손을 꼭 쥐며,
“참 그래요” 하고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어째 마음이 좀 불쾌한 듯해요” 하고 얼굴이 빨개진다. 병욱은 근 십년 기생으로 있던 계집애가 어떻게 이처럼 규문 속에서 자라난 처녀와 같은가, 하고 속으로 감탄하였다. 그러고 지금 영채의 감상이 어떠한지 그것이 알고 싶어서,
“그래 불쾌하다니 어떻게 불쾌하냐.”
“모르겠어요.”
“그렇게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바로 대답을 해라. 그러면 내 맛나는 거 사주께” 하고 둘이 다 웃는다. 영채가,
“이형식 씨가 퍽 무정한 사람같이 생각이 되어요. 그래도 내가 죽으러 갔다면 좀 찾아라도 볼 것인데…… 어느새에 혼인을 해가지고……” 하다가 병욱의 무릎에 자기의 이마를 대고 비비며, “아이구, 언니,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해요.”
병욱은 영채의 머리와 목과 등을 만져 주며 어린애게 하는 듯이,
“말하면 어떠냐…… 자, 그래서.”
“아마, 내가 여기 있는 줄을 알겠지요?”
“알 테지…… 지금 선형이가 왔다 가서 네 말을 했을 테니깐…… 알면 어떠냐.”
“어떻기야 어떻겠소마는 죽었던 사람이 살아왔다면 아마 놀랄 테지?”
“실컷 놀라 싸지. 아마 가슴이 뜨끔하리라…… 그렇게 적막할 데가 왜 있겠니.”
“만일 저편에서 나를 찾아오면 어찌해요? 만나서 이야기를 할까.”
“그러믄. 왜 무슨 원수가 있담.”
“원수는 아니지마는, 어째…….”
“어째 분이 난단 말이야?”
두 사람은 한참 잠자코 마주보더니,
“언니, 언니가 나를 살려 준 것이 잘못이야요. 나는 (그때에 꼭 죽었어야 할 터인데.) 그때에 죽었으면 벌써 다 썩어졌겠지…… 뼈만 하나씩 하나씩 여기저기 흩어졌겠지…… 그때에 죽었어야 해” 하고 후회하는 듯이 고개를 조악한다. 병욱은 영채의 낯빛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영채의 두 팔을 잡으며,
“얘 영채야,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 이제 나하고 둘이 가서 음악 잘 배워 가지구…… 둘이서 아메리카로 구라파로 돌아다니면서 실컷 구경하고…… 그러고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새로 음악을 세우고 재미있게 살 터인데 왜 그런 소리를 하니?” 하고 영채를 잡아 흔든다. 영채는 멀거니 병욱의 눈을 보고 앉았더니 눈에서 눈물이 쑥 나오며,
“아니야요. 나는 살 사람이 아니야요. 죽어야 할 사람이야요. 가만히 지나간 일생을 생각해 보니까 암만해도 나는 살려고 난 것 같지를 아니해요. 아버지와 두 오라버니는 옥중에서 죽고, 그러고 칠팔 년 고생이 모두 속절없이……” 하고 흑흑 느낀다.
“얘, 글쎄 웬일이냐. 곧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기뻐하다가 왜 갑자기 야단이냐…… 네가 그렇게 그러면 이 언니는 어쩌게…… 자 울지 마라!”
“암만 생각하여 보아도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생각이 없어요.”
“왜? 그러면 너는 아직도 이형식 씨를 못 잊는 게로구나. 네가 그때에 날더러 실상은 이형식 씨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니?”
“아니오. 다만 그 일만 아니야요. 이 세상이 내 원수가 아니야요. 내 부모를 빼앗고, 내 형제를 빼앗고, 내 어린 몸을 실컷 희롱하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마침내 내 정절을…… 내 정절을 빼앗고…… 그러고는 일생에 생각하던 사람은 아랑곳도 아니 하고…… 이렇게 구태 나를 없애고 말려는 세상에 내가 구태 붙어 있으면 무엇 해요. 세상을(세상이) 나를 미워하면 나도 세상을 미워하지요. 세상이 나를 싫다 하면 나도 세상을 버리고 달아나지요…… 하늘로 올라가지요” 하는 울음 섞인 말에 병욱도 부지불각에 눈물이 흘렀다.
“그러니깐 말이다―― 그만치 세상한테 빼앗겼으니깐 또 세상에 좀 찾아 가져야지. 내 것을 주기만 하고 말아! 네가 이십 년이나 고생을 했으니깐 그 값을 받아야 아니 하겠니?”
“값이 무슨 값이오? 하루라도 더 살아 있으면 더 빼앗길 뿐이지…….”
“아니다! 왜 그래? 이제부터는 찾는다. 아직도 전정이 구만린데 왜 어느새 실망을 한단 말이냐. 살 수 있는 대로 힘껏 살면서 찾을 수 있는 대로 찾아야지…… 사업으로 찾고 행복으로 찾고…… 왜 찾을 것을 찾지도 않고 죽어?”
“행복? 행복? 내게 행복이 올까요? 이 세상이 내게다 행복을 줄까요!”
하고 병욱의 눈물 흐르는 눈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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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욱은 수건으로 영채의 눈물을 씻어 주면서,
“얘, 다른 손님들이 이상하게 여기겠다. 울지 말아라…… 이 세상이 왜 행복을 아니 주어…… 아니 주거든 내라지. 내라도 아니 주거든 억지로 빼앗지. 빼앗아도 아니 주거든 원수라도 갚지! 또 생각을 해봐라. 이 세상에 너와 같이 설움을 당하는 사람이 너뿐이겠니?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이 이 안 된 사회제도를 고쳐서 우리 자손들이야 행복을 얻고 살게 해야지……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느냐. 그런데 만일 네가 제 고생을 못 이겨서 죽고 만다 하면 이것은 네가 우리 자손에게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하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살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일을 많이 하자…… 자, 울지 말고 딸기나 내 먹자” 하고 일어서서 등으로 결은 하얀 두룽이(종다래끼)를 내린다.
“내가 무엇을 할까요?”
“하지―― 왜 못 해? 하느님이 큰 일꾼을 만들 양으로 네게 초년 고락을 주었구나…… 자, 우리 둘이 아니 있니? 그까짓 이형식 같은 사람은 잊어버리고 우리 둘이 서로 의지하고 살자…… 자, 옜다 먹자” 하고 빨갛게 익은 딸기를 내어놓고 먼저 자기가 하나를 먹는다. 입에 넣고 씹으니 하얀 이빨에 핏빛 같은 물이 든다. 이것은 어저께 아침 곁에 병국의 부인과 셋이 그 목화밭에 가서 송별연삼아 수박을 따먹으면서 따모은 것이라. 두 사람의 눈앞에는 황주 병욱의 집 광경이 얼른 지나간다.
영채도 울어야 쓸데없음을 알고 눈물을 거둔다. 또 병욱의 말에는 정이 있고 힘이 있고 이치가 있어서 반가우면서도 자기를 내려누르는 듯한 힘이 있다. 가슴이 터져 오게 슬프다가도 병욱의 말을 한마디 들으면 그만 스르르 풀리고 만다. 영채는 병욱이가 남자같이 활발한 듯하면서도 속에는 뜨겁고 예민한 정이 있음과, 또 자기를 위로할 때에는 진정으로 자기의 몸과 마음이 되어서 하는 줄을 잘 안다. 만일 영채가 자살을 하려고 물가에 섰거나 칼을 들고 섰다가라도 병욱의 말소리만 들리면 얼른 “언니” 하고 따라갈 것이다. 영채가 보기에 병욱은 언니라기보다 어머니라 함이 적당할 듯하였다.
그러나 이십 년 생활이 한데 뭉쳐 된 영채의 슬픔이 다만 병욱의 그 말만으로는 아주 다 스러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더 자기의 고집을 부리는 것은 친절한 병욱에게 대하여 미안한 듯하여 영채도 딸기를 먹는다. 빨간 딸기가 두 처녀의 고운 입술로 들어가서는 하얀 이빨을 빨갛게 물들이곤 하다. 차창에는 비가 뿌려서 눈물 같은 물방울이 떼그루 굴러내리다가는 다른 물방울과 한데 합하여 흘러내린다. 차가 흔들리는 대로 떨리는 전등 가에는 하루살이 등속이 떼를 지어 모여 들어간다. 두 처녀의 입술과 손가락 끝이 딸깃물에 불그레하여졌을 때에 형식이가, “영채 씨!” 하고 두 사람 앞에 와 섰다.
형식은 얼마 전에 이 차실에 들어와서 바로 영채의 곁으로 오려다가 영채가 우는 듯한 모양을 보고 영채 앉은 걸상에서 서넛 건너 있는 빈 걸상에 앉아서 가만히 두 사람의 말을 엿들었다. 찻바퀴 소리에 자세히 들리지는 아니하나 이따금 이따금 한 마디씩 두 마디씩 들리는 말을 주워 모으면 대강 뜻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고 형식은 영채에게 대하여 죄송한 마음과 자기에게 대하여 부끄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여 영채에게 정성껏 사죄를 하리라 하였다.
영채와 선형은(병욱은) 놀라서 일어선다. 두 사람을(사람은) 일시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영채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형식은 고개를 숙였다. 병욱이가 오직 고개를 들고 형식에게,
“앉으시오” 한다. 형식은 앉는다.
“얘, 앉으려무나” 하는 병욱의 말에 영채도 앉는다. 그러나 고개는 여전히 돌렸다. 형식은 마치 무슨 무서운 것이나 대한 듯이 몸에 소름이 쭉 끼친다. 영채의 뒷모양이 자기를 내려누르고 위협하는 듯하다. 대동강에 빠져 죽은 영채의 넋이 지금 자기 앞에 나서서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금시에 영채가 휙 돌아서며 무서운 얼굴로 자기를 흘겨보고 입에 가득한 뜨거운 피를 자기에게다가 확 뿌리며 “이 무정한 놈아, 영원히 저주를 받아라” 하고 달겨들 것 같다. 왜 그때에 평양 갔던 길에 더 수탐을 하여 보지 아니하였던가. 왜 그때 우선에게서 돈 오 원을 꾸어 가지고 즉시 평양으로 내려가지를 아니하였던가 하여도 본다. 이제 영채가 고개를 돌리면 어찌하나. 아니 왔더면 좋겠다 하여도 본다. 이때에,
“자, 딸기 잡수십시오” 하고 병욱이가 딸기 그릇을 내어놓으며,
“얘, 영채야” 하고 자기의 발로 영채의 발을 꼭 누른다. 영채는 가만히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형식은 보지 아니한다.
“영채 씨, 용서해 줍시오. 무에라고 할 말씀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대하여서나 영채 씨께 대하여서나 큰 죄인이외다. 무슨 책망을 하시든지…….”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제가 철없이 찾아가서 공연한 걱정을 끼쳤습니다. 또 죽지도 못하는 것을 죽는다고 해서 얼마나 노심을 하셨습니까” 하고 고개를 숙인다.
병욱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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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차마 더 영채에게 말이 나오지 아니하므로 병욱더러,
“그런데 대관절 어찌 된 일이오니까. 이전부터 영채 씨를 아셨어요?”
병욱은 형식을 보고 웃는다. 그 웃음이 형식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준다. 자기를 비웃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아니올시다. 제가 방학에 집으로 오는 길에 차 속에서 만났어요.”
형식은 눈이 둥그래지며 영채를 한번 보고 다시 병욱을 향하여,
“그러면 영채 씨가 평양 가시는 길에?”
“녜” 하고 만다. 형식은 더 알고 싶었다. 영채가 어찌하여 죽을 결심을 풀었으며, 어찌하여 동경으로 가게 된 것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래 어떻게 되었어요?”
병욱은 고개를 기울여서 영채의 돌아앉은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그래서 죽기는 왜 죽는단 말이냐. 즐거운 인생을 하루라도 오래 살지 못하여 걱정인데 왜 구태 지레 죽으려느냐고 그랬지요. 그러고 지금까지는 네가 천하 사람의 조롱을 받고, 학대를 받고……” 하고는 주저하는 듯이 형식을 바라보다가 또 웃으면서, “또 일생에 생각하고 사모하던 사람에도 버림을 받았지마는……” 이 말이 끝나기 전에 형식의 가슴은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다. 병욱은 형식의 낯빛이 변하여짐을 보고 말을 끊었다가,
“그렇게 지금토록 네 일생은 눈물과 원망의 일생이지마는 이제부터 네 앞에는 넓고 즐거운 장래가 있지 아니하냐 하고 억지로 차에서 끌어내렸지요.”
“참 감사합니다. 아씨 덕에 나도 죄가 얼마큼 가벼워진 듯합니다. 저는 꼭 영채 씨께서 돌아가신 줄만 알았어요――이때에 병욱과 영채는 속으로 흥 한다―― 그래 즉시 평양경찰서에 전보를 놓고 다음 번 차로 평양으로 내려갔지요――여기 와서 형식은 자기의 변명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 기쁘다 하는 생각이 난다―― 했더니, 경찰서에서 하는 말이 정거장에 나가서 수탐을 하여 보았지마는 알 수 없다고 하지요. 그래서 알 만한 집에도 가 물어 보고, 또 박선생 묘소에도……” 하다가, 중간에 돌아온 생각을 하매 문득 말을 그치고 고개를 숙인다. 그때에 북망산까지 가보고 대동강가로 다만 한두 시간이라도 시체를 찾아보았더면 좋을 뻔하였다 하는 생각이 난다. 병욱은 한참 듣더니,
“녜, 아마 그리하셨겠지요. 그러면 시체를 찾으시느라고 꽤 애를 쓰셨겠네.”
형식은 ‘이 계집애가 꽤 사람을 골린다’ 하였다. 과연 형식의 등에는 땀이 흘렀다.
영채는 형식의 하는 말을 다 들었다. 그러고 형식에게 대하여 원통한 듯하던 마음이 얼마큼 풀린다. 그러나 형식이가 즉시 자기의 뒤를 따라 평양으로 내려온 것과, 열심으로 자기의 시체를 찾아 준 고마움도 자기가 죽은 지 한 달이 못 하여 선형과 혼인을 하여 가지고 미국으로 간다는 생각에 눌려 버리고 만다. 영채의 생각에는 형식 한 사람이 정다운 애인도 되고 박정한 낭군도 되어 보인다. 그러나 만사가 이미 다 지나갔으니 이제 와서 한탄하면 무엇 하고 분풀이를 하면 무엇 하랴. 차라리 웃는 낯으로 형식을 대하여 저편의 마음이나 기쁘게 하여 줌이 좋으리라 하는 생각도 난다. 그래서 마음을 좀 돌리기는 돌렸으나 그래도 아주 웃는 얼굴을 보여 형식에게 안심을 주고 싶지는 아니하여,
“참말 죄송합니다. 황주 가서 곧 편지를 드리려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 잠깐 살아 있는 것을 알려 드리면 무엇 하랴. 차라리 죽은 줄로 믿고 계시는 것이 도리어 안심이 되실 듯하기로 그만두었습니다…… 이제 보면 아니 알려 드린 것이 어떻게 잘 되었는지요” 하고 영채도 과히 말하였다는 생각이 나서 웃는다.
“그러면 어찌해서 엽서 한 장도 아니 주신단 말씀이오?” 하고 형식은 분개한 구조로, “그렇게 사람을 괴롭게 하십니까?” 형식은 진실로 이 말을 듣고 영채를 원망하였다. 만일 영채가 엽서 한 장만 하였으면 자기는 마땅히 당장 영채를 찾아가서 영채의 손을 잡았을 것 같다. 병욱과 영채는 형식의 분개하여 하는 얼굴을 본다. 더구나 영채는 형식에게 대하여 불안한 생각이 나서,
“그러나 저는 제가 살아 있는 줄을 알게 하는 것이 도리어 선생께 부질없는 근심을 끼칠 줄로 알았어요. 만일 제가 선생의 몸에 누가 되어서 명예를 상한다든지 하면 도리어――주저하다가―― 선생을 위하는 도리도 아니겠고…… 그래서 억지로 참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하고 또 영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형식이 영채의 하는 말을 듣다가 눈물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저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디까지든지 자기를 위하여 주는 영채의 심정이 더욱 감사하게 생각된다. 죽으려 한 것도 자기를 위하여, 살아 있으면서 살아 있는 줄을 알리지 아니한 것도 자기를 위하여 한 것임을 생각하매 자기의 영채에게 대한 태도의 너무 무정함이 후회된다.
마주앉은 눈물 흘리는 영채를 보고, 또 저편 차실에 앉은 선형을 생각하매 형식의 마음은 자못 산란하다. 세 사람 사이에는 한참 말이 없고 기차는 어느 철교를 건너가느라고 요란한 소리를 낸다. 창에 뿌리는 빗발과 흘러가는 물소리는 큰비가 아직 계속하는 줄을 알게 한다. 홍수나 아니 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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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부글부글 끓는 머리를 가지고 영채의 차실에서 나왔다. 우선이가 지켜 섰다가 형식의 어깨를 툭 치며,
“영채 씨가 울데그려.”
형식은 우선의 손을 잡으며,
“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왜, 무슨 일이 났나. 영채 씨가 바가지를 긁던가 보이그려…… 요― 호남자!”
“아니어! 그렇게 농담으로 들을 것이 아닐세…… 참, 어쩌면 좋아?”
“아따, 걱정도 많기도 많아…… 부산 가서 배 타고, 마관 가서 차 타고, 횡빈 가서 배 타고, 상항 가서 내리고 하면 그만이지 걱정이 무슨 걱정이어!”
형식은 원망스러이 우선의 얼굴을 보고 서서 무슨 생각을 하더니,
“나는 미국 가기를 중지할라네.”
“응?” 하고 우선도 놀라며, “어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