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형식은 문득 영채를 생각하였다. 영채와 자기와는 이상하게 같은 운명을 지내어 오는 듯하다 하였다. 그러고 영채가 더욱이 정다워지는 듯함을 깨달았다. 영채는 자기의 아내를 삼아 일생을 서로 사랑하고 지내야 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영채는 살았는가. 살아서 경찰서에 있는가. 또 영채의 편지가 생각나고 아까 대동강을 건너올 때에 생각하던 바를 생각하였다. 그러고 그 편지와 그 언역 쓴 종이를 넣은 가방이 자기의 무릎 위에 놓인 것을 보았다. 그러고 평양경찰서의 집과 문과 그 속에 앉아서 사무를 보는 사람들을 상상하고 영채가 울면서 혼자 앉았는 방과 자기와 노파가 영채의 방에 들어가는 모양을 상상하였다.
인력거가 우뚝 서고 인력거꾼이 호로를 벗긴다. 형식의 앞에는 회칠한 서양제 집이 있다. 문 위에는 ‘平壤警察署(평양경찰서)’라고 대자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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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가슴이 설렁거리면서 경찰서 문 안에 들어섰다. 사무 보는 책상과 의자가 다 보이고, 저편 유리창 밑에 어떤 흰 정복에 칼도 아니 차고 어깨에 수건을 걸은 순사가 앉아서 신문을 본다. 형식은 아직도 조선 땅에서 경찰서에 와본 적이 없었다. 일찍 동경에서 어떤 경찰서에 불려가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서장과 말하여 본 적은 있었으나 인민이 관청에 오는 자격으로 경찰서에 와본 적은 없었다. 그는 톨스토이의『부활』을 읽어 아라사 경찰서의 모양을 상상할 뿐이었었다. 형식은 얼마큼 불쾌한 생각을 품으면서 모자를 벗고, “여쭈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노파는 형식의 곁에 서서 무서움과 괴로움으로 치를 떤다. 그러나 순사는 그 말을 못 들은 모양. 형식은 좀더 소리를 높여,
“여쭈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 하였다. 그제야 순사가 신문을 든 채로 고개를 돌려 형식과 노파의 얼굴과 모양을 유심히 보더니,
“무슨 일이오?” 한다. 형식이 서장이 오기 전에는 자세히 알 수 없으리라 하면서,
“어저께, 서울서 평양경찰서로 어떤 부인 하나를 보호하여 달라는 전보를 놓았는데요……” 형식의 말이 끝나기 전에 순사가,
“부인?” 한다. 형식과 노파의 생각에는 ‘옳지, 영채가 여기 있는 게로고’ 하였다.
“녜― 부인 하나를 보호하여 달라고 전보를 놓았는데요…… 그래서 지금 어젯밤 차로 내려왔는데요…… 혹 그 부인이 지금 이 경찰서에 있습니까” 하면서 형식은 그 순사의 얼굴을 보았다. 순사는 말없이 신문을 두어 줄 더 읽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곁으로 오면서,
“어떤 부인을 보호하여 달라고 평양경찰서로 전보를 놓았어요?” 하고 형식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듯이 소리를 높여 묻는다. 형식은 얼마큼 실망하였다. 만일 평양경찰서에서 영채를 붙들었으면 저 순사가 모를 리가 없으리라 하였다. 노파도 눈이 둥그래지며 순사에게,
“어떤 모시 치마 적삼 입고 서양 머리로 쪽찐 열팔구 세나 된 여자가 오지 아니하였어요?” 하고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순사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한참이나 고개를 기웃기웃하고 바지에 한 손을 꽂고 책상과 의자 사이를 지나 저편으로 들어가고 만다. 두 사람은 실망하였다. 영채는 평양경찰서에 없구나 하였다. 만일 영채가 여기 없다 하면 어디 있을까. 어저께 넉점에 평양에 내려서 자기의 부친과 월화의 무덤을 보고 그 길로 청류벽으로 나와 연광정 밑에서 물에 뛰어든 것이 아닐까, 그렇다. 영채는 죽었구나 하였다. 노파가 형식의 팔을 잡으며 우는 소리로, “웬일이야요?” 한다. 형식은 울음을 참느라고 입술을 물었다.
“설마 죽기야 하였겠어요. 이제 서장이 오면 알 터이지요” 하고 노파를 위로는 하면서도 자기도 영채가 살았으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그래서 속으로 ‘왜 죽어!’ 하였다. 소학과 열녀전이 영채를 죽였구나 하였다. 만일 자기가 한 시간만 영채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더라도 영채는 죽지는 아니하였으리라 하였다. 형식은 이번에는 소리를 내어, “왜 죽어?” 하였다. 노파는 ‘설마 죽었을라고요’ 하고(하는) 형식의 말에 얼마큼 마음을 놓았다가 ‘왜 죽어?’ 하는 형식의 탄식에 다시 절망이 되었다. 노파는 형식의 손을 꽉 쥐며,
“에그, 이 일을 어째요?” 하고 운다. 그러고 ‘나 때문에 영채가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더욱 노파의 가슴을 찌른다. ‘아까, 꿈자리가 좋지 못하더니’ 하고 꿈꾸던 생각을 한다. 하얀 옷을 입고 물 위에 서서 ‘흥, 생각하니깐 우스워요’ 하다가, 갑자기 얼굴이 무섭게 변하며 입술을 깨물어 자기의 얼굴에 뜨거운 피를 뿜던 것이 생각이 난다. 그러고 그것이 영채의 혼령(魂靈)이 아니던가 하였다. 어저께 해지게 대동강에 빠져 죽은 영채의 혼령이 자기의 꿈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었다. 아아, 영채의 원혼(怨魂)이 밤낮 내 몸에 붙어서 낮에는 병이 되고 밤에는 꿈이 되어 나를 괴롭게 하지나 아니하겠는가 하였다. 자기가 오늘부터 병이 들어 얼마를 신고하다가 마침내 영채에게 붙들려 가지나 아니할까, 또는 장차 서울에 올라가는 길에 영채의 원혼이 대동강 철교를 그 입술을 물어뜯던 모양으로 물어뜯어 자기 탄 기차가 대동강에 빠지지나 아니할까 하였다. 무섭게 변한 영채의 모양이 방금 노파의 앞에 섰는 듯도 하다. 노파는 마침내 울며 형식의 어깨에 얼굴을 비빈다. 형식도 울음을 참으면서 흑흑 느끼는 노파의 등을 만지며,
“울지 마십시오. 이제 서장이 나오면 알지요” 한다.
이윽고 아까 그 순사가 들어가던 곳으로 다른 순사 하나가 나온다. 그 순사도 두 사람의 모양을 유심히 보더니 책상 서랍에서 어떤 전보를 내어보며,
“노형이 이형식이오?” 하고 형식을 본다. 형식은 순사의 손에 있는 전보를 슬쩍 보면서,
“녜, 내가 이형식이오.”
노파가 우는 소리로,
“나리께서 그런 여자를 보셨습니까” 한다. 순사는 그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이 전보는 받았지요. 그래서 정거장에 나가 보았지마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옷을 입은 사람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하고 그 전보를 책상 위에 놓으며,
“왜? 도망하는 계집이오?”
형식은 그만 실망하였다. 영채는 정녕 죽었구나 하면서,
“아니오, 자살할 염려가 있어요” 하고 자기가 전보를 놓을 때에 그 인상(人相)을 자세히 말하지 못하였던 것을 한하였다. 먼저 나왔던 순사가 나와서 책상 위에 놓인 전보를 보면서,
“평양에 몇 사람이나 내리는지 아시오? 하고많은 사람에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안단 말이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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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노파는 아주 절망하여 경찰서에서 나왔다. 안개비에 길이 눅눅하게 젖었다. 아까보다 사람도 많이 다니고 구루마도 많이 다닌다. 상점에서는 널쪽 덧문을 열고, 어떤 사람은 길가에 나와 앉아서 세수를 하며 어떤 사람은 방 안에 앉아서 소리를 내어 신문을 본다. 찌국찌국 하고 오던 물지게들은 모로 서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우편 집배인(集配人)이 검은 가죽가방을 메고 손에 열쇠 뭉치를 들고 껑충껑충 뛰어온다. 노파는 형식의 손에 매어달려 걸음을 잘 걷지 못한다. 형식은 시장증이 난다. 노파더러,
“어디 들어가서 조반을 사먹고 찾아봅시다. 설마 죽었겠어요” 한다. 노파는 형식을 보며,
“아이구, 나도 대동강에나 가서 빠져 죽었으면 좋겠소” 하고 눈물을 씻는다. 형식은 어저께 우선이로 더불어 노파의 집에 갔을 때에 ‘뒷간에 있는데 야단을 하시구려’ 하며 치맛고름을 고쳐 매던 노파를 생각하였다. 형식은,
“어서 너무 슬퍼 마시오. 아직 아니 죽고 세상에 있는지 알겠어요? 자, 어디 가서 조반이나 먹읍시다” 하고 혼자말 모양으로, “장국밥이 있을까?” 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노파는 ‘아니 죽고 세상에 있는지!’ 하는 말에 얼마큼 위로를 얻으며,
“장국밥집에를 어떻게 들어갑니까. 나 아는 집으로 가시지요” 한다. 노파가 ‘나 아는 집’이라면 기생집이리라 하였다. 그러고 어리고 고운 기생들의 모양이 눈에 얼른 보인다. 그러고 노파의 말대로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난다. ‘예쁜 여자를 보기만 하는 것이야 상관이 있으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모양으로 아름다운 꽃을 대하는 모양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그러나 한 핑계가 되기 쉽다’ 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내 마음은 깨끗하다’ 하면서,
“어디오니까. 그러면 그리로 가시지요” 하고는 그래도 노파의 뒤를 따라 기생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모양이 흉하다 하여 노파를 거기 데려다 두고 자기는 어디든지 다른 데로 가리라 하였다.
형식은 노파의 뒤를 따라 어떤 깨끗한 기와집 대문 밖에 섰다. 아직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고 쓴 대문은 열리지 아니하였다. 노파는 마치 자기 집 사람을 부르는 모양으로,
“얘들아, 자느냐. 문 열어라!” 하면서 문을 서너 번 두드리더니 형식을 돌아보며,
“영채가 여기는 있으면 아니 좋겠어요” 하고 뜻없이 웃는다. 형식은 속으로 ‘영채는 벌써 죽었는데’ 하고 말이 없었다. 이윽고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가 신을 짤짤 끌며 나와서,
“누구셔요?” 하고 문을 연다. 형식은 한 걸음 비켜 섰다. 어떤 얼굴에 분자리 보이는 십삼사 세 되는 계집아이가 노파에게 매어달리며 반가운 듯이,
“아이구, 어머니께서 오셨네” 하고 ‘네’자를 길게 뽑는다. 머리와 옷이 자다가 뛰어나온 사람이로구나 하고 형식은 두 사람이 반가워하는 양을 보았다. 어여쁜 처녀로다. 재주도 있을 듯하고 다정도 할 듯하다 하였다. 그러나 저도 기생이로구나 하고 형식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아직 처녀의 모양으로 차렸건마는 벌써 처녀는 아니리라. 혹 어젯저녁에 어떤 사나이의 희롱을 받지나 아니하였는가 하였다. 노파는 대문 안에 한 걸음 들어서면서 목을 내어밀어,
“들어오시지요. 내 집이나 다름없습니다” 한다. 그 어린 기생은 그제야 문 밖에 어떤 사람이 있는 줄을 알고 고개를 기울여 형식을 본다. 형식은 그 좀 두터운 듯한 눈껍질이 곱다 하면서,
“나는 어떤 친구에게로 갈랍니다. 조반을 먹거든 이리로 오지요” 하고 모자를 벗는다. 노파는 문 밖으로 도로 나오며,
“그러실 것이 있어요, 들어오시지. 내 동생의 집인데요” 하고 형식의 소매를 잡아당긴다. 그래도 형식은 굳이 간다 하는 것을 이번에는 그 어린 기생이 나와 그 고운 손으로 형식의 등을 밀고 아양을 부리며,
“들어오셔요!” 한다. 형식의 생각에 아무리 보아도 그 어린 기생의 마음에는 티끌만한 더러움도 없다 하였다. 저 영채나 선형이나 다름없는 아주 깨끗한 처녀라 하였다. 그러고 그 등을 살짝 미는 고운 손으로 따뜻한 무엇이 흘러들어오는 듯하다 하였다. 형식은 남의 처녀를 볼 때에 늘 생각하는 버릇으로 ‘내 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얼마를 더 사양하다가 마침내 마지못하여 그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 팔을 노파에게 잡히고 다른 팔을 그 어여쁜 기생에게 잡히고 들어가는 맛은 유쾌하다 하였다. 인도함을 받아 들어간 방은 영채의 방과 크게 틀림이 없었다. 그 어린 기생은 얼른 먼저 뛰어들어가 자리를 갠다. 형식은 문 밖에서 그 빨간 깃들인 비단 이불이 그 어린 기생의 손에서 번적번적하는 양을 보았다. 노파와 형식은 들어앉았다. 기생은 저편 방에 가서 기쁜 소리로,
“어머니, 서울 어머니께서 오셨어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형식은 그 방에서 무슨 향내가 나는 듯이 생각하였다. 그러고 방바닥을 짚은 형식의 손은 따뜻한 맛을 깨달았다. 이는 그 기생의 몸에서 흘러나온 따뜻함이라 하였다. 이윽고 기생이 어린아이 모양으로 뛰어들어오며,
“지금 어머니 건너오십니다. 그런데 아침차로 오셨어요?” 하고 말과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빛이 보인다. 형식은 ‘다 같은 사람이로구나’ 하였다. 따뜻한 인정은 사람 있는 곳에 아무 데나 있다 하였다. 그러고 담배를 내어 들고 조끼에서 성냥을 찾으려 할 제 그 기생이 얼른 성냥을 집어 불을 켜들고 한 손으로 형식의 무릎을 짚으면서,
“자, 붙이시오!” 한다. 형식은 그를 깨끗한 어린아이 같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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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여자의 손에 담뱃불을 붙이기가 미안한 듯도 하고 수줍은 듯도 하여,
“이리 줍시오” 하였다. ‘줍시오’ 하는 것을 보고 그 기생은 쌕 웃는다. 웃을 때에 윗 앞니에 커다란 금니가 반짝 보인다. 그 기생은 형식의 무릎을 짚은 손을 한번 꼭 누르고 어리광하는 듯이 몸짓을 하면서,
“자, 이대로 붙이셔요” 하고 ‘요’자에 힘을 준다. 노파는 형식이가 그저께 ‘월향 씨’ 하던 것을 듣고 우습게 여기던 것을 생각하고 빙그레 웃는다. 형식이가 사양하는 동안에 기생의 손에 있던 성냥이 다 탔다. 기생은,
“에그, 뜨거워라” 하고 그것을 방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살짝 엎디어 입으로 혹 불고 성냥을 잡았던 손가락으로 제 귀를 잡는다. 형식은 미안한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 귀를 잡는 손가락을 자기의 입에 대고 ‘호’ 하고 불어 주고 싶다 하면서,
“아차, 덥겠구려(뜨겁겠구려)” 하였다. 기생은 손가락을 귀에 대고 잠깐 형식의 얼굴을 보더니 또 다른 성냥개비를 그어 아까 모양으로 한 손을 형식의 무릎 위에 놓으면서 숨이 찬 듯이,
“자, 이번에는 얼른 붙입시오” 하고 성냥개비가 반쯤 타는 것을 보고는 제 몸을 춤을 추이며 급한 듯이, “자, 얼른, 얼른” 한다. 형식은 고개를 숙여 궐련에 불을 붙이고 첫 번 입에 빤 연기를 그 기생의 얼굴에 가지 않도록 ‘후’ 하고 옆으로 뿜었다. 기생은 형식이가 담뱃불을 다 붙인 뒤에도 여전히 형식의 얼굴을 쳐다본다. 형식은 눈이 부신 듯이 고개를 들어 마당을 내다보면서 ‘그 눈이 마치 꿈을 꾸는 듯하구나’ 하였다. 기생은 성냥개비가 다 타기를 기다리는 듯이 두 손가락으로 그 성냥개비를 돌린다. 형식은 그 기생의 머리와 등을 본다. 새까만 머리를 느짓느짓 땋고 끝에다 새빨간 왜증 댕기를 드렸다. 그 머리채가 휘임하여 내려가다가 삼각형(三角形)으로 접은 댕기 끝이 치마 허리쯤 하여 가로누웠다. 형식은 그 댕기 빛이 핏빛과 같다 하였다. 기생은 성냥개비를 뱅뱅 돌리다가 잘못하여 형식의 다리 위에 떨어트렸다. 기생은, “아이구머니!” 하면서 두 손으로 형식의 다리를 때린다. 그러나 그 불티가 형식의 무명 고의 주름에 끼어 고의에 구멍이 뚫어지고 넓적다리가 따끔한다. 형식은 그 기생이 미안하여 하기를 두려워하여 두루마기로 얼른 거기를 가리고,
“불이 꺼졌소” 하였다. 기생은 형식의 무릎에서 손을 떼고 민망한 듯이 몸을 추이면서,
“에그, 고의가 탔지요? 더우셨겠네” 하며 고개를 돌려 노파를 본다. 노파는 빙그레 웃으면서,
“계향아, 너는 그저 어린애로구나!” 하였다. 노파는 확실히 이 기생의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깨끗한 영혼을 보았다. 그러고 형식이가 그 어린 기생을 보는 눈에는 조곰도 더러운 욕심이 없다 하였다. 형식은 자기가 흔히 보지 못하던 종류의 사람이라 하였다. 그래서 형식이가 이 어린 기생에게 대하여 ‘하시오’ 하고 존경하는 말을 쓰던 것이 처음에는 시골뜨기와 같고 무식한 듯하더니 도리어 점잖고 거룩하다 하였다.
형식은 그 어린 기생의 말과 모양을 보고 무슨 맛나는 좋은 술에 반쯤 취한 듯한 쾌미를 깨달았다. 마치 몸이 간질간질한 듯하다. 더구나 그 기생이 자기의 무릎에 손을 짚을 때와 불을 떨어뜨리고 그 조고마한 손으로 자기의 넓적다리를 가만가만히 때릴 때에는 마치 몸에 전류를 통(電流通)할 때와 같이 전신이 자릿자릿함을 깨달았다. 형식은 생각하기를 자기의 일생에 그렇게 미묘(微妙)하고 자릿자릿한 쾌미를 깨닫기는 처음이라 하였다. 그 어린 기생의 눈으로서는 알 수 없는 광선(光線)을 발하여 사람의 정신을 황홀하게 하고, 그 살에서는 알 수 없는 미묘한 분자가 뛰어나 사람의 근육(筋肉)을 자릿자릿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형식은 선형을 생각하고, 일전 선형과 마주앉았을 때에 깨닫던 즐거움을 생각하고, 또 자기가 희경을 대할 때마다 맛보던 달콤한 맛과 기타 정다운 친구를 대할 때에 맛보던 즐거움을 생각하고, 또 차 속이나 배 속이나 길가에서 처음 보는 사람 중에도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주는 자가 있음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모든 그러한 즐거움 중에 지금 그 어린 기생이 주는 듯한 즐거움은 처음 본다 하였다. 그러고 그 이유는 그 어린 기생의 얼굴과 태도와 마음이 아름다움과 피차에 아무 욕심도 없고 아무 수단도 없고 아무 의심도 없고 서로서로의 영(靈)과 영(靈)이 모든 인위적(人爲的)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적나라(赤裸裸)하게 융합(融合)함에 있다 하며, 또 이렇게 맛보는 즐거움은 하늘이 사람에게 주신 가장 거룩한 즐거움이라 하였다. 각 사람의 속에는 대개는 서로 보고 즐거워할 무엇이 있는 것이어늘, 사람들은 여러 가지 껍데기를(껍데기로) 그것을 싸고 싸서 흘러나오지 못하게 하므로 즐거워야 할 세상이 그만 냉랭하고 적막한 세상이 되고 맒이라 하였다. 그 중에도 얼굴과 마음이 아름답게 생기거나, 혹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조각(彫刻)을 하며, 시(詩)를 짓는 사람은 이 인생을 즐겁게 하는 거룩한 천명(天命)을 가진 자라 하였다.
이윽고 ‘어머니’가 나오더니,
“에그, 형님께서 오셨네” 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듯하다. 형식은 생각하였다. ‘저들도 사람이로다’ 저의들 속에도 ‘참사람’이 있기는 있다. 사람의 붉은 피와 사람의 따뜻한 정이 있기는 있다 하였다. ‘어머니’는 얼른 형식에게 초면 인사를 하고 노파의 곁에 앉으며,
“그런데, 월향이 잘 있소?”
“에그 저런, 나는 형님의 안부도 묻기를 잊었네” 하고 ‘두터운 듯’한 눈시울을 잠깐 움직이며 형식을 본다. 형식은 ‘잊은 것이 아니라, 잊은 것보다 더욱 정답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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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는 새로이 눈물을 흘리면서 영채의 말을 하였다. 영채가 청량사에서 어떤 사람에게 강간을 당할 뻔한 일과,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입술을 물어뜯고 울던 일과, 그 이튿날 아침에 자기가 자는 데 들어와서 평양에 갈 말을 하던 것과, 차를 탈 때에 자기에게 편지 한 장을 주었고 그 편지에는 이러이러한 말을 썼던 것과, 오늘 아침에 평양경찰서에 와서 물어 보던 일을 말하고 나중에,
“그런데 그 이형식이라는 이가 이 어른이구나” 하고 손으로 형식을 가리키며 ‘어머니’의 어깨에 쓰러져 운다. 어머니와 계향도 이야기를 들을 때에 고이기 시작한 눈물이 이야기가 끝나매 솰솰 흐르기 시작하며, 눈물로 잘 보이지 아니하는 눈으로 물끄러미 형식을 본다. 형식은 의외로 생각하였다. 형식의 생각에 계향은 몰라도 ‘어머니’는 영채의 말을 들으면 와락 성을 내며 ‘미친년! 죽기는 왜 죽어!’ 할 줄로 생각하였었다. 그랬더니 영채의 죽었단 말을 듣고 슬피 우는 양을 보매 그 따뜻한 인정은 자기와 다름이 없다 하였다. 그러고 지금껏 기생이라면 자기와는 전혀 정신상태가 다른 한 짐승과 같은 하등 인종으로 알던 것이 부끄럽게 생각된다. 어머니는 한참이나 울더니 코를 풀며,
“원래 월향이가 마음이 꼭하였습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월화와 친해서 밤낮 월화의 말만 들었으니까, 꼭 마음이 월화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형님은 그런 줄을 못 알아보고 월향더러 손을 보라 한 것이 잘못이지” 하고, “지나간 일을 어찌하겠소. 울지 마오” 하며 형식을 본다. 형식은 눈물 흘리는 양을 아니 보이려 하여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피운다. 노파도 코를 풀면서,
“내니 십 년이나 제 딸과 같이 기른 것을 미워서 그랬겠나. 저도 차차 낫살이 많아 가고…… 평생 기생 노릇만 할 수도 없을 터이니까 어디 좋은 자리를 구하여 일생 편히 살 만한 곳에 보낼 양으로 그랬지. 그런데 김현수라는 이는 부자요, 남작의 아들이요, 하기로 그리로 보내면 저도 상팔자겠다 하고 그랬지” 하며 눈물을 씻는다. 형식은 혼자 놀랐다. 노파의 ‘평생 기생 노릇만 할 수도 없으니까’ 하는 말을 듣고, 그러면 김현수에게 억지로 붙이려 한 것이 영채의 일생을 위하는 뜻이던가 하였다. 노파가 영채를 죽인 것이 다만 천 원 돈을 위하여 한 악의(惡意)가 아니요, 영채의 일생을 위하여 한 호의(好意)인가 하였다. 그러면 영채를 죽인 노파의 마음이나 영채를 구원하려 하는 자기의 마음이나 필경은 같은 마음인가 하였다. 그러면 필경은 세상과 인생에 대한 표준과 사상이 다르므로 이러한 일이 생긴 것인가 하였다. 이때에 어머니가 형식에게 극히 은근하게,
“이주사께선들 얼마나 슬프시겠소. 그러나 그것도 다 전생의 연분이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나요. 세상이란 그렇지요” 하고 고개를 돌려 노파에게,
“자 울지 마오. 다 전생의 연분이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나? 시장하시겠소. 조반이나 먹읍시다” 하고 빨떡 일어나면서 혼자말로, “어쩌나, 장국밥을 시켜 올까, 집에서 밥을 지으랄까” 하고 머뭇머뭇하더니 획 밖으로 나간다. 형식은 생각하였다. 이것이 그네의 인생관이로구나. 인생 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슬픈 일을 다 전생의 인연이라,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 하여 한참 눈물을 흘리고는 곧 눈물을 씻고 단념한다. 그네의 생각에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는 것은 미련한 자의 하는 일이니 잠깐 눈물을 흘리다가 얼른 눈물을 씻고 마는 것이 좋은 일이라 한다. 그러므로 그네는 모든 일의 책임을 다 ‘전생의 인연과 팔자’에 돌리지, 결코 사람에게 돌리지 아니한다. 영채가 기생이 된 것이나 김현수에게 강간을 받은 것이나, 또는 대동강에 빠져 죽은 것이나 다 그 책임은 전생의 인연에 있는 것이요, 결코 노파에게나 영채에게나 또는 김현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다. 따라서 영채가 정절을 지키는 것도 영채라는 사람이 특별히 좋아 그런 것이 아니요, 영채라는 사람의 전생의 연분이 그러하여 자연히 또는 아니하지 못하게 정절을 지킴이라 한다. 그러므로 그네가 보기에 특별히 좋은 사람도 없고 특별히 좋지 못한 사람도 없고, 다 전생의 인연과 팔자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네의 인생관과 형식의 인생관이 얼마큼 일치하는 듯하다. 그러나 두 인생관의 근본적 차이점(根本的 差異點)은 이러하다. 형식은,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개인(個人) 또는 사회(社會)의 노력으로 개인이나 사회가 개선(改善)될 수 있고 향상(向上)될 수 있다 하고, 그네는 모든 일의 책임이 전혀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니 다만 되는 대로 살아갈 따름이요, 사람의 의지(意志)로 개선함도 없고 개악(改惡)함도 없다 한다. 형식은 이렇게 생각하다가 혼잣말로,
‘옳지! 이것이 조선 사람의 인생관(人生觀)이로구나’ 하였다. 그러나 노파는 ‘어머니’ 모양으로 잠깐 눈물을 흘리다가 얼른 눈물을 그치지 아니한다. 노파는 ‘세상’을 보는 외에 ‘사람’을 보았다. 영채의 따끈따끈한 입술의 피가 자기의 손등에 떨어질 때에 노파는 ‘사람’을 보았다. 노파는 이번 일의 책임을 전혀 인연과 팔자에 돌리지 못한다. 노파는 영채를 죽인 책임이 자기와 김현수에게 있는 줄을 알고 영채가 정절을 굳게 지킨 것이 영채의 속에 있는 ‘참사람’의 힘인 줄을 알았다. 노파는 이제는 모든 일의 책임이 사람에게 있는 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노파는 ‘잠깐 울다가 얼른 눈물을 그치’지는 못한다. 노파의 이 눈물은 일생에 흐를 눈물이로다.
계향이가 형식의 무릎에 몸을 기대고 눈물로 빨개진 눈으로 형식을 물끄러미 보며,
“형님이 죽었을까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