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ura
← 소설로 돌아가기

41장~60장 (4/6)

챕터 16 · 2336단어 · ~12 분 소요

“어젯저녁에 칠 년 동안이나 그리고 그리던 선생을 (뵈오매, 마치 이미 세상을) 버리신 어버이를 대한 듯하여 기쁘기 그지없었나이다. 칠 년 전 선생께옵서 안주를 떠나실 때에 집 앞 버드나무 밑에서 이 몸을 껴안으시고, 잘 있거라 다시는 볼 날이 없겠다 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던 것과, 그때에 아직도 열두 살 된 철없는 이 몸이 선생의 가슴에 매어달리며 가지 마오, 어디로 가오, 나와 같이 갑시다, 하던 것을 생각하오매 자연히 비감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소리를 내어 울었나이다.

이렇게 이별하온 후 칠 년 동안 의지할 데 없는 외롭고 어린 이 몸이 부평과 같이 바람 가는 대로, 물결 가는 대로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며 동서로 표류하올 때에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으며 한숨인들 얼마나 쉬었사오리이까.

오직 한 가지 바라는 것은, 평양 감옥에서 철창의 신음을 당하시는 부친을 뵈옴이라, 열세 살 된 계집의 몸이 바람에 불리는 나뭇잎 모양으로 이리 굴고 저리 굴며, 이리 부딪고 저리 부딪쳐 평양 감옥에 흙물 옷을 입으신 부친의 얼굴을 대하기는 하였사오나, 무섭게 여윈 그 얼굴을 대할 때에 어린 이 몸의 가슴은 바늘로 쑥쑥 찌르는 듯하였나이다.

이에 철없는 이 몸은 감히 옛날 어진 여자의 본을 받아 몸으로써 부친을 구하려는 마음을 품고, 어떤 사람의 소개로 기생에 판 것은 이 몸이 열세 살 되던 해 가을이로소이다. 그러하오나 이 몸을 팔아 얻은 이백 원은 이 몸을 팔아 준 사람이 가지고 도망하니 부모의 혈육을 팔아 얻은 돈으로 부친의 몸을 구원하지도 못하고 철장에서 신음하시는 늙으신 부친에게 맛난 음식 한 때도 받들어 드리지 못한 것이 골수에 사무치는 원한이어든, 하물며 이 몸이 기생으로 팔림을 위하여 부친과 두 형이 사오 일 내에 세상을 버리시니 슬프다, 이 무슨 변이오리이까. 이 몸이 전생에 무슨 죄가 중하여 어려서 부친과 두 형을 옥에 가시게 하고, 다시 이 몸으로 말미암아 부친과 두 형으로 하여금 원망의 피를 뿜고 세상을 버리시게 하나이까. 오호라 이를 생각하오매 가슴이 터지고 골수가 저리로소이다. 이 몸이 만일 적이 어짐이 있었던들 마땅히 그때에 부친에 뒤를 따랐을 것이언마는 차홉다 완악한 이 목숨은 그래도 끊어지지 아니하고 부지하였나이다.

부친과 두 형을 여읜 후, 이 몸이 세상에 믿을 이가 누구오리까. 선생께서도 아시려니와 이 몸이 의지할 곳이 어디오리까. 아아, 하늘뿐이로소이다. 땅이 있을 뿐이로소이다. 그리하고 세상에 있어서는 선생뿐이로소이다.

이 몸은 그로부터 선생을 위하여 살았나이다. 행여나 부평같이 사방으로 표류하는 동안에 그리고 그리는 선생을 만날 수나 있을까 하고 그것을 바라고 이슬 같은 목숨이 오늘까지 이어 왔나이다. 이 몸은 옛날 성인과 선친의 가르침을 지키어 선친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이 몸을 허하신 바 선생을 위하여 구태여 이 몸의 정절을 지키어 왔나이다. 이 몸이 이 몸의 정절을 위하여 몸에 지니던 것을 여기 동봉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몸은 이미 더러웠나이다. 아아, 선생이시여, 이 몸은 이미 더러웠나이다. 약하고 외로운 몸이 애써 지켜 오던 정절은 작야에 물거품〔水泡〕에 돌아가〔歸〕고 말았나이다.

이제는 이 몸은 천지가 허하지 못하고 신명이 허하지 못할 극흉 극악한 죄인이로소이다. 이 몸이 자식이 되어는 어버이를 해하고 자매가 되어는 형제도 해하고 아내가 되어는 정절을 깨트린 대죄인이로소이다.

선생이시여! 이 몸은 가나이다. 십구 년의 짧은 인생을 슬픈 눈물과 더러운 죄로 지내다가 이 몸은 가나이다. 그러나 차마 이 더럽고 죄 많은 몸을 하루라도 세상에 두기 하늘이 두렵고 금수와 초목이 부끄러워, 원(怨)도 많고 한(恨)도 많은 대동강의 푸른 물결에 더러운 이 몸을 던져 탕탕한 물결로 하여금 더러운 이 몸을 씻게 하고, 무정한 어별로 하여금 죄 많은 이 살을 뜯게 하려 하나이다.

선생님이시어! 이 세상에서 다시 선생의 인자하신 얼굴을 대하였으니 그만하여도 하늘에 사무친 원한은 푼 것이라 하나이다. 후일 대동강상에서 선생의 옷에 뿌리는 궂은 비를 보시거든 박명한 죄인 박영채의 눈물인가 하소서. 이 편지 마치고 붓을 떼려 할 제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리오나이다. 오호라 선생이시여 부디 내내 안녕하시고 국가의 동량(棟樑)이 되셔지이다” 하고 떨리는 붓으로, ‘歲次丙辰六月二十九日午前二時에 죄인 朴英采는 泣血百拜(세차병진 유월 이십구일 오전 두시에 죄인 박영채 읍혈백배)’라 하였다. 차차 더 떨던 형식의 손은 그만 편지를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그러고 흑흑 느끼며 굵은 눈물을 무릎 위에 펴놓인 편지 위에 떨어뜨린다. 떨어진 눈물은 편지에 쓰인 글자를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우선도 소매로 눈물을 씻고, 노파는 치마로 낯을 가리오고 방바닥에 엎드린다. 한참이나 말이 없다. 마당에서는 점점 더 단김이 오른다.

🙝 🙟

형식은 소매로 눈물을 씻고, 무릎 위에 놓인 눈물에 젖은 영채의 편지를 눈이 가는 대로 여기저기 다시 보았다. 그러나 형식의 눈에는 그 편지의 글자가 자세히 보이지 않는 듯하였다. 형식은 편지를 둘둘 말아 방바닥에 내려놓고 그 편지와 동봉하였던 조고마한 봉투를 떼었다. 우선과 노파의 눈물 흐르는 눈은 다시 형식의 손에 있는 조고마한 봉투로 모였다. 형식은 그 봉투 속에 무슨 무거운 것이 있음을 보고, 봉투를 거꾸로 들어 자기의 무릎 위에 쏟았다. 빨간 명주 헝겊으로 싼 길쭉한 것이 나온다. 형식은 실로 묶은 것을 끊고 그 명주 헝겊을 풀었다. 명주 헝겊 속에서 여러 해 묵은 듯한 장지 뭉텅이가 나온다. 형식은 그 뭉텅이를 들고 무엇을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그 장지 뭉텅이를 폈다. 형식은 “응!” 하고 놀라는 소리를 발한다. 우선과 노파의 눈은 그 뭉텅이로부터 형식의 얼굴로 옮았다. 그러고 형식의 뚝 부릅뜬 눈에는 새 눈물이 고임을 보았다. 우선과 노파의 눈은 다시 형식의 떨리는 손에 든 장지 조각으로 옮았다. 그 장지 조각에는 ㄱㄴㄷ과 가나다를 썼다. 아이들이 처음 언문을 배울 때에 써 가지는 것이었다. 그 글씨는 어리더라. 형식은 체면도 보지 아니하고 그 장지 조각에 이마를 비비며 소리를 내어 운다. 우선과 노파는 웬일인지 모르고 형식의 들먹들먹하는 등만 본다. 형식은 안타까운 듯이 그 종이에다 얼굴을 부비며 더욱 우는 소리를 높인다. 우선도 눈에 새로 눈물이 돌면서도 ‘형식은 어린애로다’ 하였다. 형식은 십여 년 전 생각을 한다. 형식이 처음 박진사의 집에 갔을 때에는 영채의 나이 여덟 살이었었다. 그때에 영채는『천자문(千字文)』과『동몽선습(童蒙先習)』과『계몽편(啓蒙篇)』과『무제시(無題詩)』를 읽었더라. 그러나 아직도 언문을 배우지 못하였더라. 한번은 박진사가 ‘국문을 배워야지’ 하면서 좋은 장지에 가나다를 써주었다. 그러나 어린 영채는 밖에 가지고 나가 놀다가 어디서 그 종이를 잃어버렸다. 이에 영채는 아버지의 책망이 두려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여서 그때 열세 살 된 형식에게 몰래 청하였다. 그때에는 아직 형식과 영채가 말을 하지 아니하던 때라, 영채는 부끄러운 듯이 반쯤 외면하고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저, 언문 써주셔요” 하였다. 이 말을 할 때의 영채의 얼굴과 태도는 형식의 눈에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참 어여쁜 계집애로다’ 하고 형식도 부끄러운 생각이 나면서, “녜, 내일 아침에 써드리지요” 하고 오 리(五里)나 되는 종이 장사 집에 몸소 가서 장지를 사다가―이 종이가 그 종이다― 있는 정성을 다 들이고, 있는 힘을 다하여 넉 장이나 써버리고야 이것을 썼다. 그것을 써서 책 사이에 끼워 두고 ‘어서 아침이 왔으면’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저, 언문 써주셔요’ 하고 모로 서서 주먹으로 눈물을 씻는 영채의 모양이 열세 살 되었던 형식의 가슴속에 깊이깊이 박혔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 형식은 더욱 양치와 세수를 잘하고 두루마기를 방정히 입고 그 종이―이 종이로다―를 접어 품에 품고 대문에 서서 영채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생각은 마치 사랑을 하는 남자가 사람 없는 곳에서 그 사랑하는 처녀를 기다리는 생각과 같았다. 이윽고 영채도 누가 보기를 꺼리는 듯이 사방을 돌아보며 가만가만 나오다가 형식의 곁에 와서는 너무 기쁜 듯이 얼굴이 빨개지며 형식의 허리를 꼭 쓸어안았다. 형식은 자기의 가슴에 치는 영채의 머리를 살작 만졌다. 지금 세수를 하였는지 머리에는 물이 묻었더라. 그러고는 품속에서 그 종이―이 종이로다―를 내어 영채에게 주었다. 그 종이는 형식의 가슴의 체온(體溫)으로 따뜻하더라. 영채도 그 종이의 따뜻함을 깨달았는지 한 걸음 물러서서 가만히 형식의 눈을 보더니 낯이 빨개지며 뛰어들어갔다. ‘이것이 그 종이로구나!’ 하고 형식은 고개를 들어 다시금 그 종이와 글자를 보았다. 그 글자가 제가끔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듯이 안주에서 지내던 일과, 자기의 그 후에 지내던 일과, 영채의 이야기와 편지와 자기의 상상과로 본 영채의 일생이 번개 모양으로 형식의 머리로 지나간다. 형식은 한번 더 입술을 물며―이것은 불식부지간에 영채에게 배운 것―그 종이를 끝까지 폈다. 그 끝에는 새로 쓴 글씨로, “이것이 이 몸이 평생에 지니고 있던 선생의 기념이로소이다” 하였다. 우선과 노파도 이 글을 보고 형식의 우는 뜻을 대강 짐작하였다. 그러고 우선은 그 종이를 형식의 손에서 당기어 한번 더 보았다. 노파도 우선과 함께 그 종이를 보았다. 형식은 다시 무릎 위에 있는 종이 뭉텅이를 풀었다. 그 속에서는 ‘황옥지환(黃玉指環)’ 한 짝과 조고마한 칼 하나가 나온다. 그 칼날이 번적할 때에 세 사람의 가슴은 뜨끔하였다. 노파는 속으로 ‘저것이 이태 전에 김윤수의 아들 앞에서 뽑던 칼이로구나’ 하였다. 형식은 그 칼을 집어 안과 밖을 보았다. 안 옆에 행서로, ‘일편심(一片心)’이라고 새겼다. 형식과 우선도 대개는 그 칼의 뜻을 짐작하였다. 형식은 다시 그 지환을 집었다. 노파는 “어째 한 짝만 있는고” 하였다. 형식은 그 지환에 아무것도 쓰지 아니하였음을 보고 지환을 쌌던 종이를 집었다. 그 종이에는 잘게 쓴 글씨로,

“이것은 평양 기생 계월화의 지환이로소이다. 계월화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으시려거든 아무러한 평양 사람에게나 물으소서. 월화가 이 몸에게 이 지환을 준 뜻은 썩어진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뜻이로소이다. 이 몸은 이제 힘껏 이 지환이 가르치는 바를 행하였나이다. 장차 이 지환을 대동강에서 원혼이 된 월화에게 돌려보내려니와 이 한 짝을 선생께 드림이 또한 무슨 뜻이 있는가 하나이다.”

하고 아까 편지의 모양으로 연월일시 죄인 박영채 읍혈백배라 하였더라.

🙝 🙟

세 사람은 말이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제가끔 제 생각을 하였다. 한참이나 이러하다가 노파가 숨이 차서,

“여봅시오, 이 일을 어찌해요?” 하고 형식과 우선의 눈을 번갈아 본다. 노파의 일생에 남의 일을 위하여 이처럼 진정으로 슬퍼하고 걱정하고 마음이 괴로워하기는 처음이라. 노파는 어젯저녁에 진정으로 영채를 안고 울던 생각을 하였다. 그때에 영채가 생각하던 바와 같이 노파가 진정으로 남을 위하여 눈물을 흘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채의 입술에서 흐르는 피가 따끈따끈하게 노파의 손등에 떨어질 때에, 또 영채가 “남들이 다 내 살을 뜯어먹으니 나도 내 살을 뜯어먹으렵니다” 하고 피 나는 입술을 더욱 꼭꼭 물어뜯을 때에 노파의 마음은 진실로 거북하였었다. 그때에 노파가 영채의 뺨에다 자기의 뺨을 대고 엉엉 소리를 내어 울 때에는 노파의 마음은 진실로 ‘참사람’의 마음이었었다. 그때에 노파가 마음속으로 영채를 향하여 합장 재배할 때에 노파의 영혼은 더러운 죄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하느님이나 부처의 맑은 모양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고 자기가 이백 원에 사서 돈벌이하는 기계로 부리던 월향이라는 기생의 속에는 자기가 절하고 우러러볼 만한 무엇이 있음을 보았다. 그러고 명일부터는 영채를 자유의 몸을 만들고 자기도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영채와 자기와 정다운 모녀가 되어 서로 안고 서로 위로하며 즐겁게 깨끗하게 세상을 보내리라 하였다. 그러고 자리에 돌아와 벌써 코를 고는 ‘영감쟁이’를 볼 때에 ‘에그 더러운 짐승’ 하고 옷을 입은 대로 저 윗목에서 혼자 누워 잤다. 그때에 ‘에그, 더러운 짐승’이라 함은 다만 ‘영감쟁이’의 몸뚱이가 더럽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금 영채의 영혼과 자기의 영혼과 하느님과 부처를 본 눈으로 ‘영감쟁이’의 때묻은 사람을 볼 때에 자연히 구역이 난 것이라. 마치 더러운 집에서 생장한 사람이, 자기의 집이 더러운 줄을 모르다가도 한번 깨끗한 집을 본 뒤에는 자기의 집이 더러운 줄을 깨닫는 모양으로, 노파는 일생에 깨끗한 영혼과 참사람을 보지 못하다가 따끈따끈한 영채의 피에 오십여 년 죄악에 묻혀 자던 깨끗한 영혼이 깜짝 놀라 눈을 떠서, 백설과 같고 수정과 같은 영채의 영혼을 보고, 그를 보던 눈으로 자기의 영혼을 본 것이라. 그러다가 영감쟁이의 ‘사람’을 보니 비로소 더러운 줄을 깨달은 것이라. 그러나 아침에 영채가 분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고 방글방글 웃으며 들어오는 양을 보매 노파의 영혼의 눈은 다시 감기어, 어젯저녁에 보던 영채의 ‘속사람’을 보지 못하고 다만 영채의 육체만 보았을 뿐이다. 그때에 어젯저녁의 기억은 마치 수십 년 전에 지나간 일과 같았다. 그러므로 영채가 ‘생각하여 보니까 우스운 일이야요’ 할 때에 노파는 옳다구나 하고 ‘잘 생각하였다. 과연 그러하니라’ 하고 다시 영채를 돈벌이하는 기계로 삼으려 하는 욕심이 났었다. 그래서 영채를 평양에 보낸 후로부터 지금 영채의 편지를 볼 때까지 노파는 영채로 하여금 밤에 ‘손을 보’게 할 생각과, 김현수에게 이천 원에 팔아먹을 생각만 하였었다. 그러나 영채의 편지를 보매 갑자기 그러한 생각이 스러지고 칼과, 지환과, 형식의 눈물을 볼 때에 어젯저녁 떴던 노파의 영혼의 눈이 뜨였다. 노파는 오늘 아침 영채에게 ‘잘 생각하였다. 과연 그러하니라’ 하던 것을 생각하매, 일변 부끄럽기도 하고 일변 영채의 ‘속 사람’에 대하여 죄송하기도 하였다. 마치 눈앞에 영채가 보이며 ‘흥, 잘 생각하였다!’ 하고 노파의 하던 말을 조롱하는 듯도 하다.

노파의 눈에 늠실늠실하는 대동강이 보인다. 영채가 어떤 조고마한 바윗등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두 손에 치맛자락을 들고 물 속에 뛰어들려 한다. 그때에 자기가 “월향아, 월향아, 내가 잘못하였다. 내가 죽일 년이다” 하고 뒤로 뛰어들어가 월향을 붙들려 하였다. 그러나 월향은 고개를 돌려 씩 웃고 “흥, 틀렸소. 내 몸은 더러웠소!” 하면서 그만 물 속에 들어가고 만다. 자기는 그 바윗등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월향아, 내가 잘못하였구나? 네 몸을 더럽히게 한 것이 내로구나. 월향아? 용서하여라” 하는 듯하다. 그러고 어저께 “할 수 없소. 죽으려니까” 하고 실망하는 김현수더러 “여봅시오, 남자가 그렇게 기운이 없소? 한번 이러면 그만이지!” 하고 눈을 찡긋하여 김현수에게 월향을 강간하기를 권하던 생각이 난다. 옳다, 그렇다, 월향의 정절을 깨트린 것은 내로구나, 월향을 죽인 것은 내로구나, 하고 가슴이 타는 듯하여 입으로 숨을 쉬면서 또 한번,

“아이구,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하고 안타까운 듯이 두 무릎으로 방바닥을 탁탁 친다. 형식은 지금껏 이 비극을 일으킨 것이 다 저 더러운 뚱뚱한 더러운 노파라 하여 가슴이 아프고 원망이 깊을수록, 지극히 미워하는 눈으로 노파를 흘겨보더니, 노파가 심하게 고민하는 양을 보고 ‘네 속에 졸던 영혼이 깨었구나’ 하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던 도적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저 노파는 역시 사람이라, 나와 같은 영채와 같은 사람이라 하는 생각이 나서 노파의 괴로워하는 모양이 불쌍히 보인다. 그러나 형식은, 노파가 아까 자기더러 ‘나는 누구신 줄도 모르고’ 하던 것을 생각하니 금시에 동정하는 마음이 스러지고 아까보다 더한 싫고 미운 생각이 난다. 그래서 형식은 한번 더 노파를 흘겨보았다. 노파는 형식의 흘겨보는 눈을 보고 또,

“아이구, 이 일을 어째요” 하고 무릎으로 방바닥을 친다. 우선은 묵묵히 앉았더니 형식더러,

“여보, 얼른 평양경찰서에 전보를 놓고 밤차로 노형이 평양으로 가시오!” 한다.

🙝 🙟

우선은 속으로 영채의 이번 행위는 마땅하다 하였다. 정조가 여자의 생명이니 정조가 깨어지면 몸을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여자 된 영채가 어젯저녁 청량사 사건에 대하여 잡을 길은 이 길밖에는 없다 하였다. 그러고 영채는 과연 옳은 여자로다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고 자기가 여태껏 영채를 유혹하던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사상(思想)에는 모순(矛盾)이 있는 줄을 우선은 모른다. 영채가 기생 월향일 때에는 기생이니까 정절을 깨트려도 상관이 없고, 월향이가 영채가 된 뒤에는 기생이 아니니까 정절을 지킴이 마땅하다…… 이것이 분명한 모순이언마는 우선은 그런 줄을 모른다. 우선의 생각을 넓히면 ‘열녀는 열녀니까 정절을 깨트림이 죄어니와, 열녀 아닌 여자는 열녀가 아니니까 정절을 깨트려도 죄가 아니라’ 함과 같다. 그러면 이는 선후(先後)를 전도(顚倒)함이니, 열녀이니까 정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절을 지키니까 열녀어늘, 우선의 생각에는 열녀면 정절을 지킬 것이로되, 열녀가 아니면 정절을 지키지 아니하여도 좋다 함이라. 그러므로 우선은 영채가 열녀인 줄을 모를 때에는 정절을 깨트려 주려 하다가 열녀인 줄을 안 뒤에는 영채의 정절을 깨트리려 한 것을 후회하고 부끄러워함이라. 아무려나 우선은 영채의 이번 행위가 가장 좋은 행위라 한다. 그러나 형식은 이 일에 대하여 우선의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생각한다. 형식도 영채가 그처럼 정절이 굳은 것을 김탄은 한다. 죽으려고까지 하는 깨끗하고 거룩한 정신을 보고 존경도 한다. 그러나 형식의 생각에는 우선과 같이 ‘영채의 이번 행위가 가장 옳은 일’이라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사람의 생명(生命)은 우주(宇宙)의 생명과 같다. 우주가 만물(萬物)을 포용(包容)하는 모양으로 인생(人生)도 만물을 포용한다. 우주는 결코 태양(太陽)이나 북극(北極)만으로 그 내용(內容)을 삼지 아니하고, 만천(滿天)의 모든 성신(星辰)과 만지(萬地)의 모든 만물로 다 포용을 삼는다. 그러므로 창궁(蒼穹)에 극히 조고마한 별도 우주의 전생명(全生命)의 일부분(一部分)이요, 내지 지상(地上)의 극히 미세(微細)한 지풀잎 하나, 티끌 하나도 모두 우주의 전생명의 일부분이라. 태양이 지구(地球)보다 위대(偉大)하니, 태양(太陽)이 우주(宇宙)의 생명(生命)에 대한 관계가 지구(地球)의 그것보다 크다고는 할지나, 그렇다고 태양(太陽)만이 우주(宇宙)의 생명(生命)이요, 지구(地球)는 우주(宇宙)의 생명(生命)에 관계가 전무하다고는 못 할지라. 또 태양계(太陽系)에 있어서는 태양(太陽)이 중심(中心)이로되, 무궁대(無窮大)한 전우주(全宇宙)에 대하여는 태양(太陽) 그 물건도 한 티끌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라. 이와 같이 사람의 생명(生命)도 결코 일의무(一義務)나 일도덕률(一道德律)을 위하여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요, 인생(人生)의 만반 의무(萬般義務)와 우주(宇宙)에 대한 만반 의무(萬般義務)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충(忠)이나, 효(孝)나, 정절(貞節)이나, 명예(名譽)가 사람의 생명(生命)의 중심(中心)은 아니니, 대개 사람의 생명(生命)이 충(忠)이나 효(孝)에 재함이 아니요, 충(忠)이나 효(孝)가 사람의 생명에서 출함이라. 사람의 생명(生命)은 결코 충(忠)이나 효(孝)나의 하나에 속한 것이 아니요, 실로 사람의 생명(生命)이 충, 효, 정절, 명예 등(忠, 孝, 貞節, 名譽 等)을 포용(包容)하는 것이 마치 대우주(大宇宙)의 생명(生命)이 북극성(北極星)이나 백랑성(白狼星)이나 태양(太陽)에 재함이 아니요, 실로 대우주(大宇宙)의 생명(生命)이 북극성(北極星)과 백랑성(白狼星)과 태양과 기타 큰 별, 잔 별과 지상(地上)의 모든 미물(微物)까지도 포용(包容)함과 같다.

댓글